신조어 · 가이드
내로남불 뜻: 왜 같은 행동을 다르게 판단할까?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말이에요. 같은 행동을 두고 자신이나 자기편에는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태도를 비판할 때 써요.
처음에는 연애 관계를 빗댄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정치, 직장, 일상 등 다양한 상황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이중 잣대를 비판할 때 사용해요.
네 글자를 풀면 뜻이 바로 보여요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에요.
내 — 내가 하면
로 — 로맨스
남 — 남이 하면
불 — 불륜
처음에는 연애 관계를 빗댄 표현이지만, 지금은 정치, 직장, 일상 등 다양한 상황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이중 잣대를 비판할 때 사용해요.
겉으로 보면 사자성어 같지만, 한자 네 글자로 이루어진 말이 아니라 한국어와 외래어를 섞어서 만든 줄임말입니다.
같은 행동, 다른 기준
약속에 늦었다고 해서 무조건 내로남불은 아니에요. 내가 늦었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었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똑같이 늦으면 ‘정말 무책임하다’고 비난한다면 어떨까요? 자신의 행동에는 이유와 사정을 붙이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는 잘못만 보는 거예요. 내로남불의 핵심은 행동 자체보다, 누가 했느냐에 따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데 있어요.
비슷한 뜻으로 ‘이중 잣대’라는 표현도 있어요. ‘내로남불’이 상대의 모순을 꼬집는 구어적인 표현이라면, ‘이중 잣대’는 공식적인 글이나 토론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에요.
일상에서는 ‘내로남불이네’, ‘완전 내로남불인데?’, ‘생각해 보니 나도 내로남불이었네’처럼 말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뿐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돌아볼 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누가 했는지를 바꿔 보세요
내로남불인지 생각해 보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같은 행동을 다른 사람이 했어도 똑같이 판단했을까요?
내가 늦었을 때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면서, 동료가 늦으면 무책임하다고 하네. 이거 내로남불 아닌가?자신의 지각에는 관대하면서 동료의 지각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상황이에요.
직장에서상대편이 같은 정책을 내놓았을 때는 그렇게 비판하더니, 자기편이 내놓으니까 찬성하네. 완전 내로남불이네.정책의 내용이나 상황이 실질적으로 같은데도, 어느 진영이 제안했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요. 물론 새로운 정보나 달라진 상황 때문에 의견을 바꾸는 것까지 내로남불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정치에서남이 규칙을 어길 때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막상 내가 급해지니까 예외부터 찾았네. 나도 내로남불이었어.내로남불은 다른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태도가 아닙니다. 때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말이기도 해요.
나 자신에게글쓴이의 생각
우리는 왜 자기편의 잘못에 더 관대할까?
사람은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때 행동 자체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모든 사람의 사정을 똑같이 알고 있을까요?
가족이나 친구의 잘못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평소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알고 있죠. 반면 모르는 사람의 행동을 볼 때는 그 사람의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판단하기 쉽습니다.
이런 차이는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에요. 사회심리학에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기생충》: 누구의 사정을 먼저 들었을까?
이 부분에는 영화 《기생충》의 주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우리는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의 이야기를 먼저 만납니다.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왜 일자리가 필요한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기택 가족은 박 사장 집에 취업하기 위해 거짓 경력을 만들고,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이 해고되도록 계획합니다.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에요.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 기택 가족의 계획이 성공하기를 바랐던 관객도 있을 겁니다. 이미 그 가족의 사정을 알고 있으니까요.
이후 문광과 근세의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그들에게도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사정이 있어요. 하지만 처음에는 기택 가족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존재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두 가족이 똑같은 행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선택과 잘못을 단순히 같은 것으로 취급할 수도 없어요.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관객이 누구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누구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되는가입니다. 기택 가족에게는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시간이 먼저 주어졌습니다. 반면 문광과 근세의 사정은 한참 뒤에 알게 됩니다.
그 차이가 우리가 인물들을 바라보는 감정과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행동을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그 행동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함께 판단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한국의 ‘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국어에는 ‘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생기는 애착이나 친밀감을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에요. ‘정이 들다’, ‘정이 많다’, ‘정 때문에’ 같은 말에서도 볼 수 있죠.
한국어에서는 가족이나 소속 집단을 이야기할 때 ‘우리’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 가족, 우리 학교, 우리 회사.
물론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거나 정이 깊다고 해서 반드시 자기편만 감싸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은 관계를 지키는 힘이 될 수 있어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실수했을 때 우리는 그 잘못만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평소 어떤 사람인지, 무슨 어려움이 있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는 그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기회를 주기도 해요. 저는 이것이 정이 가진 좋은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이런 이해와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베풀기 어려울까요?
가까운 사람의 잘못에는 사정이 있고, 모르는 사람의 잘못에는 변명만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없을까요? 우리 편 사람이 규칙을 어겼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찾으면서, 다른 편 사람이 같은 규칙을 어겼을 때는 원칙부터 이야기하지는 않을까요?
물론 모든 경우에 같은 판단을 내려야 공정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상황이나 책임의 정도가 다르다면 판단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상황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기준을 바꾸는 경우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은 좋은 것이지만, 그 이해가 자기편에게만 허용된다면 내로남불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을 버려야 공정해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사정까지 이해하려는 태도는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해하려는 마음 자체가 아니라 그 마음을 누구에게까지 적용하는가일지도 모릅니다.
《기생충》에서 기택 가족의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행동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면, 문광과 근세의 사정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때는 어땠을까요? 가까운 친구가 실수했을 때 그 친구의 사정을 먼저 들어준다면,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같은 기회를 줄 수 있을까요?
저는 공정함이 반드시 감정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편을 이해하려는 만큼 다른 사람의 사정도 들어보려는 노력에서 공정함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로남불은 다른 사람의 모순을 지적하기에 아주 편리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배울 때 한 번쯤은 질문을 반대로 돌려보면 어떨까요? 나는 정말 같은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을까요?
이 질문으로 이야기 나눠요
- 가까운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같은 잘못을 했을 때, 우리는 정말 똑같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경험이나 생각을 댓글로 나눠 주세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면 그 이야기도 좋습니다.
연습과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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